아이와 제주올레길 걷기/ 제주 올레길 20코스 / 아이와 제주도여행
어느 유튜버의 순례길 영상을 보던 중 눈에 들어온 어떤 한 가족.
부부, 자녀 3명 총 5명이서 걷고 있었다.
막내로 보이는 귀여운 아이는 가방을 메었고 5살 정도 되어 보였다.
그 장면을 보면서 느낀 점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아이들도 순례길을 걸을 수 있구나',
그리고 아빠부터 막내까지 '자기 짐을 스스로 짊어지고 가는구나'였다.
남편과 바로 계획을 세웠다.
올여름휴가는 제주도로 가되 올레길을 걷자.
그리고 성산 일출봉을 올라가자.
8살인 열매를 고려해 그나마 쉽고 평탄한 코스를 찾았는데 중문 쪽 코스였다.
재작년에 서쪽부터 중문까지 돌았기 때문에 이번엔 동쪽 라인으로 돌고 싶어서 다시 검색.
그나마 나아 보이는 코스는 올레 20코스였다.
김녕부터 세화까지 17.6km인데 당연히 코스를 완주하지는 못하겠고
적정선을 찾은 구간이 월정리부터 세화까지였다.
20코스의 반보다 좀 더 긴 약 11km였다.
그래서 숙소도 월정리로 잡게 된 것이었다.
우리의 계획
편의점에서 아침 - 올레 20코스 출발 - 중간지점 카페에서 휴식
- 세화 스탬프 찍고 점심 먹기 - 택시나 버스로 되돌아오기.
제주 도착하고 이튿날 바로 출발했다.

아침의 월정리 바다 너무 예쁘다

어제와 다른 바다를 바라보며 출발

열매는 가방 안에 생수 한 병, 간식, 모자를 챙겨 넣었다.
(17년 베페에서 산 피엘라벤 칸켄백은 진짜 몇 년째 쓰는 잘 산 탬이다.
다시는 이 가격에 살 수 없다 생각해 애가 나오기도 전에 삼)

포토존에서 기념촬영도 빼먹지 않기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몸으로 느껴 보았다

바다를 벗어나 안쪽으로 들어간다.

제주에서 관광지나 갔었지 이런 마을로 들어가는건 처음인 듯 하다.

수확을 끝낸 마늘을 말려놓은 모습

중간중간 올레길 표지판을 보면서 길을 걷는다.

안쪽으로 들어오니 바람은 덜 불고 햇볕이 찌니 모자를 쓰는 열매씨

여기는 막 수확하고 나란히 누워있는 마늘이다. 제주어로 마농

길을 따라 펼쳐진 밭에서 제주 어머님들이 일하시는 모습도 보았다.

중간중간 지도를 보여주면서 여기가 어디인지 알려주었다.

지도 확인했으면 다시 출발-

마을 중간중간 민박집이 꽤 많았다.
귀여웠던 어멍민박

잠시 바다쪽으로 다시 나오는 코스

기촬 빼놓을 수 없지!

걷고 30분 정도 지났나 '다시 돌아가고 싶다'라고 말하는 열매에게 특효 처방
(나랑 경보하는 중)

특효 처방은 바로 시원한 음료수! 활기를 되찾게 해주고자 계획에 없던 리치 망고를 들렀다.

추억의 리치망고. 맛은 예상 가능했다. 애플망고 쉐이크 8,500원
냉동 망고에 물이랑 시럽넣고 섞은 맛이지만 다시 걸어갈 힘을 주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가는 길에 귀요운 강아지도 만나서 인사하고
(무서워서 다가서지 못함ㅎㅎ)

올레길 이정표를 보면서 다시 걸어본다.

당 충전을 했더니 힘이 불끈 솟은 열매가 앞장서서 간다.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어)

예뻤던 낡은 파란 대문

평탄했던 마을길을 지나 다시 좁은 언덕으로 들어서는 길

망고 쉐이크 덕분에 힘이 난 열매는 열심히 올라갔지만

내려오는 가방에서 느껴지는 지침

결국 아빠가 가방을 들어준다.
처음엔 아이가 끝까지 들고 가도록 해야지 왜 중간에 가방을 들어줄까?라고 생각했지만
그것 또한 내가 정해놓은 틀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빠에게 짐을 덜어내고 조금은 가벼워진 너의 뒷모습

산속을 걸을 때엔 나뭇가지를 찾아서 부메랑처럼 날려도보고
칼이라며 싸움도 하고
앉아서 무엇인가 관찰도 하고
본인만의 즐거움을 찾으면서 가는 모습이 예뻐보여서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열매의 장꾸력은 아빠에게서 나온 것임이 분명하다.
나뭇가지 들고 쫓아오는 모습

지도를 보더니 더 빠른 지름길이 있다고 가보자던 우리 남편.
자기가 관측병이어서 잘 안다고, 먼저 가서 한번 보겠다고 성큼 성큼 가더라
길이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지켜본다.

여보 풀이 가슴까지 나있어서 못가 돌아가~~
어. 여보만 나오면 돼

길을 가던 중 돌부리에 걸린 우리 열매
많이 아팠는지 엉엉 울면서 '왜 엄마가 바로 안오냐고' 또 엉엉
아니..아빠가 있으니까 괜찮을 줄 알았지^^;
찍고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안아주고 보니 손바닥과 무릎이 까져있더라.
갖고 있는 생수를 부어 닦아주고 다시 출발

조금만 힘을 내면 이제 잠깐 휴식 할 카페가 나온다.

넘어져서 텐션이 바닥으로 떨어진 열매의 손을 잡고 양산을 나눠쓰고 간다.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거라고 이야기 하면서 가던 길

좁고 구불거리는 길을 지나 도로가로 나왔다.

아빠 저기야!
카페를 발견한 아빠와 아들

우리의 생각보다 더 오래 걸려서 도착한 카페.

여기 들어오니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가웠다.

자리를 잡고 누우니 세상 편하고 좋은지 연신 웃고 있는 열매.
음료와 빵을 먹고 다시 남은 구간 가보려고 했는데 더 이상은 못 가겠다는 열매의 말에 우리도 동의했다.
그래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너무 고생했다.
남은 구간은 다음 여행 때 또 걷자!
일단 반이라도 걸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우리였다.
(우리도 힘들어서 또 갈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더라)

달나비 민박에서 인더비치카페까지 걸은 구간은 총 5.6km
소요시간은 오전 9시 45분 출발 - 11시 54분 도착했으니 약 2시간 걸었다.
평소에 걸을 일이 많지 않았던 열매에게 올레길 걷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무엇인가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다시 물어보면 올레길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열매를 보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